명상에 중요성 (P. 43 ~ 45)
아인슈타인이 그 단어(마인드브레인)를 직접 사용하였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지만 “많은 문제가 무의식중에 해결된다”고 하고, “말이 아닌 이미지로 대부분 문제를 해결해 냈다”,“쓰거나 말하는 단어나 언어는 내 생각의 메커니즘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생각의 요소들을 받쳐 주는 듯 보이는 어떤 영적 존재들은 어떤 신호이거나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분명한 이미지들인데 그것들은 스스로 반복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결합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마인드브레인이라는 단어는 그때까지 마음(정신, 혹은 영혼 등등)과 뇌로 이분화되어 있던 것을 하나의 통합체로 표시한 용어이다. 마인드브레인에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인식하는 부분(생각)과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며, 마인드브레인은 인식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미인식 영역에서 꿈을 통해 이미지 혹은 전혀 엉뚱한 방식의 힌트로 보여 주지만 그것을 우리는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블레흐너의 주장이다.
내가 문제 해결을 위해 꽤 오랫동안 사용하여 온 것은 꿈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식 상태에서 미인식 영역을 건드리는 방식이다. … 둘째, 인식 상태에서 들어 본 적 없는 음악 소리를 듣는 것이다. … 유행가도 아니고 상당히 긴 그런 음악 소리를 듣다가 번쩍 힌트가 스쳐 가는 경험을 나는 아주 많이 했었기에, 적어도 나에게는 그 음악 소리들이 앞에서 설명한 만트라가 되어 전선 재배치를 도와주었다고 믿는다.
나 또한 그와 같이 명상이나 음악 소리를 통해 번쩍 힌트가 스쳐 지나가는 경험들을 많이 해보았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이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눈을 감고 숨에 집중하며 음악을 들으면 된다. 생각이 길어지고 복잡해지는가 싶으면 다시 숨에 집중하면 된다. 그리고 이를 반복한다. 이를 통해 인식 속에서 미인식 영역을 건드릴 수 있다.
낮은 곳에서 사는 법 (P.48 ~ 49)
부자로 살고 있는 지금도 내가 만에 하나 무슨 잘못 때문에 재산을 다 날리게 되어 빈털터리가 된다면(솔직히 그럴 리는 없다. 나는 비 올 때를 대비하여 우산을 서너 개는 반드시 준비하기 때문이다), 나는 즉시 가족을 이끌고 제로 점으로 내려갈 것이다. 그곳은 판잣집일 수도 있고, 남의 집 차고일 수도 있으며, 쓰러져 가는 무허가 비닐하우스일 수도 있다. 나의 아내는 내가 빈털터리가 되어 망해 버렸는데도 넥타이를 계속 걸치고 양복을 입고 다니면서 다단계 판매나 보험영업 같은 것을 하며 품위를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아내는 내가 즉시 작업복을 입고 시장에서 노점이라도 할 사람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믿는다. 실제로도 그렇다. 나는 언제라도 제로 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둘째 딸이 태어났을 때 이미 나는 자가용 기사를 거느리고 있었고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틀림없이 앞으로 더더욱 부자로 산다. 나는 딸들에게도 그 비결을 알려주고 싶다. 그 비결 중 하나는 낮은 곳에서 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존경하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사실 그렇게 사회적 인식으로든 시각에서든 대단한 친구는 아니다. 내가 그에게 존경심을 가지는 이유는 딱 하나 그가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왔음에도 불구하고 밝고, 깊은 마음을 품고 있다고 생각돼서이고, 또한 현실적으로 살 줄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와 같은 환경에 놓였을 때 현재의 그와 같을 수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만약 내가 그와 같은 조건 속에서 살았다면 나는 그가 이룬 것들을 이룰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는 이유 (P.142)
사람들이 내게 웬 책을 그렇게 읽느냐고 물을 때마다 내가 준 대답은 “내가 경영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내가 자기도취에 빠진 것은 아닌지, 내가 똥 묻는 개인데 겨 묻은 개를 탓하기만 하는 건 아닌지, 내 눈 속의 들보를 못 보고 남의 눈 속의 티끌만 보는 것은 아닌지, 내가 제대로 일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것인지 등등이 불안하다 보니 확인을 받으려고 읽는다.”라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에게 맞서기 (P.171)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의 인생을 조용히 보내고 있다. 이른바 체념이라는 것은 확인된 정말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에 태어난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에서 한 말인데 지금도 마찬가지 아닐까? 조용한 절망 속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SNS에 무엇을 올릴지를 생각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먹방을 보거나 드라마 정주행하는 것일까? “자기 자신을 사냥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좀 더 고귀한 스포츠가 아닐까.“(이것 역시 소로가 <월든>에서 한 말이다.) 그 말을 새겨들어라! 나도 나 자신을 사냥의 대상으로 삼으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자기 자신을 사냥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란 무엇일까? 이는 아마 자기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것일 터이다. 주변 이들의 기준으로 보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남들이 논다고 놀지 말고, 남들이 뭘 갖고 있다고 가지려 하지 말고, 자기 기준에서 바라보라는 것이다.
Integrity (P.186 ~ 189)
직원을 채용할 때는 지능이 좋은지, 일을 선도적으로 열정을 갖고 이끌어 나갈 수 있는지, 그리고 Integrity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머리도 좋고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열정도 있으나 Integrity가 없는 자는 회사를 망칠 사람이다. Integrity가 없는 사람을 고용하면 직원들을 게으름뱅이, 멍청이로 만들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은 이 말을 여러 곳에서 하였는데 도대체 Integrity가 무슨 뜻이기에 지능이나 선도력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게 말하는 것일까?
나는 [Integrity를 ‘인테그리티란 분열되지 않고 완전한 상태’]라고 [해석하는 것을 좋아한다]. 인간에게 분열되지 않고 완전한 상태란 무엇일까? ‘생각과 가치관, 말과 행동’이 따로 놀지 않고 일치하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테그리티한 사람은 일관성이 있다.
정직하다고 해서 꼭 인테그리티한 것은 아니다.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한 것을 고백한다면 그것은 정직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인테그리티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미 자신의 신념과 말과 행동이 분열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직함이나 성실함은 인테그리티를 온전히 담는 표현은 아니다.
결국 인테그리티란(시대와 문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자신이 옳다고 믿거나 생각하는 것을 말과 행동을 통해 일관성 있게 실천하는 것이다.
도전은 아무나 하는게 아닌 것 (P.675)
현실에 대한 당신의 불안감을 인정하고 몇 번을 넘어져도 좋다는 자세를 가져라. 말쑥한 무릎보다는 상처투성이에 꿰맨 자국도 몇 개 있는 무릎을 부러워하며 당신 앞에 던져진 현실의 삶에 도전하라. 그런 자세가 되어 있어야 비로소 세상 속에서의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있다. 아, 물론 도전하는 것 자체를 성격상 혹은 인생철학상 등의 이유로 싫어하거나 피곤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도전은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주는 조언이 있다.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꼭 그렇게 살아야 해?”라고 말하지는 말아라. 나 같은 사람은 오히려 당신에게 “꼭 그렇게 살아야 해?”라고 물을 것이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당신 영혼의 불꽃은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