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적지 않은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이 그들의 풍족한 가정 안에서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이기심을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의 자녀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그들은 생기 없는 고립된 생활에 반항한다. 왜냐하면 실은 그들은 원하는 모든 것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적지 않은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이 그들의 풍족한 가정 안에서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이기심을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의 자녀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그들은 생기 없는 고립된 생활에 반항한다. 왜냐하면 실은 그들은 원하는 모든 것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두드러진 예를 과거의 역사에서 든다면 그것은 로마제국의 부유층의 자녀이며, 그들은 가난과 사랑의 종교를 신봉했다. 또 하나의 예는 불타이며, 그는 왕자로서 그가 원하는 모든 쾌락과 사치를 누릴 수 있었지만 소유와 소비는 불행과 고통을 가져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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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슷한 현상을 부유한 가정환경 속에서의 생활을 권태롭고 무의미한 것으로 보고 있는 미국과 독일의 부유층의 자녀들 가운데에서도 목격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그들로서는 세계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해서 냉담하고, 개인적인 자기중심주의 때문에 점차 핵전쟁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풍조가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이리하여 그들은 가정환경에 노력이 성공할 가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불만에 싸여 있는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원래는 가장 이상주의적이고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세대였으나 여기에 이르러서는 전통, 성숙, 경험, 정치적인 지혜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자포자기에 빠지게 되거나 그들의 능력과 가능성을 과대평가하는 자기도취에 빠져 불가능한 일까지도 폭력으로 달성하려고 한다. 그들은 이른바 혁명집단을 결성하여 태러행위와 파괴행위로써 세계를 구제해 보려는 기대를 갖고 있지만 그들이 폭력과 비인간성에의 일반적 경향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사랑하는 능력을 상실했으며 그대신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려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자기희생은 가끔 사랑하는 것을 열망하면서 사랑하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을 위한 해결책이 된다. 그들은 자기의 생명을 희생하는 데서 가장 고도의 사랑의 경험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자기희생적인 젊은이들은 <사랑의 순교자>, 즉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살기를 바라고, 자신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 죽어야 할 때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는 아주 다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자기희생적인 젊은이들은 피고이기도 하지만 또한 원고이기도 하다. 이것은 우리의 사회체제 내에서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의 일부가 절망에서 벗어나는 길이 파괴와 광신주의밖에 없을만큼 너무나 고립되고 절망감에 빠져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